사찰소개

절로~절로~템플스테이

광주 무등산의 서쪽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증심사 간혹 옛 기록에는 징심사 라고도 했지만, 요즘은 증심사라 부른다.
헌인왕4년(860) 철감국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때 혜조국사가 중창하였다.
조선 세종 때 김방이 중창 하였는데, 이 때 오백나한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 불탔고, 광해군때 또다시 대규모 중수가 있었다.
일제 감정기 때 한일 불교의 공동원류설이 제장된 적이 있다. 두말할 나위없이 내선일지라는 식민지 문화정책을 발로였다.
이때 만해 한용운 등은 한국과 일본 불교의 뿌리는 전혀 다르다는 논지를 폈다. 즉 일본의 경우 염불종, 조동종등이 주류를 이루면서 신도와의 융합이 이루어진 반면, 한국은 임제선을 중심으로 하는 선종이 주류였다는 주장이다, 그때 임제종 운동을 펼친 본거지가 바로 증심사였다.
1951년 6.25 전란으로 대부분 건물들이 불타 없어졌다. 1970년 이후 활발한 복원작업을 펼처 지장전-비로전적묵당 등을 새로 건립하였다, 다행히 참화를 피한 오백전이 유일한 조선조의 건물이 셈이다,
증심사는 비록 한국동란 때 원형을 잃어버렸다고는 하지만 광주지역의 대표적 사찰로 손꼽힐 만하다. 무등산이라는 빼어난 산세의 중심에 있을뿐더러 오랜 역사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긍람’ 에도 호남의 빼어난 명승으로 꼽았으며 ‘광주읍지’ 등에도 무등산의 정기를 함축하고 있는곳이라고 찬탄 하였다. 지금의 건물들은 1971년에 중창된 것이 대부분이다. 역사성을 고려하여 증심사 일원은 모두 광주광역시 문화재 1호로 지정된바 있다. 터가 반듯하지 못하기 때문에 경사진 땅에 석축을 쌓고 그 몇 개의 단으로 나누어진 곳에 여러 건물들을 배치하였다.